1. 연구 목적 및 배경
1930년대에 조선시대의 무기발달사를 주제로 최초의 논문을 쓴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존 부츠였다. 그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칼보다 붓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민족이었지만 전쟁을 즐기는 주변의 이민족들 때문에 언제나 손에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들고 전장으
무기인 조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행주대첩에 대해 살펴보면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군 3만 명 대 조선군 2천 3백 명으로서 적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로 싸워 이겼던 전투이다. 그리고 이 전투는 단 하루 만에 끝났다. 그럼 들어가기에 앞서 행주대첩이 일어난 시기
Ⅰ. 서론
우리나라의 화약과 화포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으며 그 발전은 어떠하였을까? 우리나라의 화약과 화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세조실록』에서 화포는 신라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정비되고 조선에 와서 완성된 훌륭한 무기라고 한 기
무기 의 제조, 근대적 자연과학, 외국어를 배우게 하는 한편, 일본에는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여 명치유신 이후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던 근대적 문물을 시찰하게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책에는 당연히 근대적 문물에 대한 지식 이 있는 인사들이 필요하였으므로 개화파들은 자연히 정부안의 여러
세종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서북 변경의 개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화약과 화약 병기의 전술적인 활용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화기의 수요가 늘고 화약의 생산량도 급속히 증가하면서 화약과 화포의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져 많은 기술 진보를 이루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