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의 자력에 의해 1940년 9월 17일 총사령부 성립식을 거행하고, 임정의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또한 광복군은 독립군의 인적 맥락을 계승하였다. 즉 총사령 이청천.참모장 이범석.제1지대장 이준식.제2지대장 공진원.제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의 핵심간부들이 1930년대 만
광복군이 시급히 국내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였고, 싸전트는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싸전트는 광복군의 국내진입문제를 즉각 곤명에 있는 OSS본부에 보고하였다. OSS측이 작성한 ‘독수리작전 8월 월례보고서’에 “육군대위 싸전트의 제안으로 한국인들로 구성된 승리
한국광복군의 역사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항일군대. 1932년 이후 임시정부(臨時政府)의 규모는 축소되었고 재정상 운영의 내용도 부실하였다. 더욱이 1937년 중 ․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각지에 흩어져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단체들은 충칭에 이전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통일
1.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창립
임시정부는 독립군 창설 준비를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된 것이어서, 1919년 9월 11일 공포된 통합임시정부의 임시헌법에서 독립전쟁에 대비한 군사제도를 헌법상 정립했으며, 임시정부 수립직후 상해에서 군사학교를 세워 6개월 속성과정으로 1920년 5월 8일 제 1회 졸
Ⅰ. 서론
신한혁명당이 추진한 망명정부 수립운동의 실패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한 오판에 기인한 것이었다. 결국 대한제국의 망명정부를 추진하던 신한혁명당이 완전히 해체되고 1917년 3월 동 당의 영수격인 이상설 마저 사망하면서 독립운동 진영은 새로운 방도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