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개혁을 주제로 선정하고 19세기 후반의 국내외의 상황과 대한제국의 성립과정을 살펴보고, 대한제국의 성립 후 진행된 광무개혁의 내용과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광무개혁과 관련된 유적을 답사함으로서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야만 했던 우리
'달궁' 시리즈를 통해 기법 실험의 한 극단을 보여 주었다.
그 밖에 냉소주의적인 입장에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고원정의 '거인의 잠' 이나, 역사 소설의 기법으로 우리 현실을 우회적으로 그려 낸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등도 소재의 확대를 가져온 부류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광무라 고치고, 10월에 국호를 대한, 왕을 황제라 칭한 후 황제즉위식을 갖는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은 이용익, 이채연 등을 등용해 광무개혁을 실시하고,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국국제가 이 기간에 반포된다. 그러나 반외세적이고, 반제국주의를 주창한 대한제국을 일본이 가만히
어지러웠던 역사의 정가운데에 있는 시기로서 그 의의를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제국의 성립배경과 과정, 그리고 광무개혁에 관하여 대한제국의 성립부터 멸망까지의 현장이 된 덕수궁을 둘러보고 그 역사적 가치와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