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성립 이전의 한국 군대는 외국 침략에 대비하기는커녕 국내 치안도 담당하기에 부족한 실정이였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청일전쟁 직후 러시아와 대결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군대 확충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해군 증강에 힘을 쏟아 1896년 당시 전함 3척과 비무장 순양함 12척이던
대한 이해는 여기까지로 하고, 마조히즘적인 특성이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강화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짚어보도록 하자.
3. 마조히즘의 확대 재생산
한국의 근현대사는 타율성으로 점철된다. 19세기 말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조선왕조에 수차례 무력도발로
왜곡된 역사인식문제와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우익 정치집단에 대한 반감과 댜오위다오 섬 영유권 분쟁은 근현대사에 있어서 중일간에 이어져 온 오랜 갈등문제이다. 최근에는 미중패권전쟁의 영향과 함께 힘을 얻는 일본의 동북아에서의 패권 쟁취 움직임에 군사 정치적 긴장은 더욱 고조
제국주의 동맹’을 그 시작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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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한국 근대사(근현대사)의 역사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던 일반 대중들을 어떻게 하면 새로운 민주체제의 지지세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민주적 이행과정을 거친 나라들이
한국사가 제외한 것이다. 근래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귀속문제, 일본의 교과서에 보이는 역사왜곡 문제,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일본의 외교적 쟁점화 시도 등의 사안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역사 내지 (한)국사의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강력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장에서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