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독립군의 창립
일제가 만주침략을 자행한 1931년 9월 18일 당시 동북변방군 사령관 장학량의 군대는 일제 관동군보다 숫 적으로 우세하였다. 그러나 장학량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쟁 회피 소극적 대책에 동의하여 처음에는 무저항 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1932년 만주국을 세우자 만주군
3·1운동 직후 국내외 각처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합 과정에서 국내를 기반으로 성립된 한성임시정부를 내세워 임시정부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명분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라도, 한성임시정부를 통합의 지표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국내에서 성립된 사실에서 찾아져야 것이다.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전열을 정비하고 민족 역량을 축적해 갔다.
① 3.1 운동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면서 독립운동은 크게 변화 발전하였다. 3.1 운동이 일어난 본바탕은 우리 민족의 오랜 항쟁의 전통, 그리고 강점 이후 10년간 혹독한 식민지 수탈로 인한민중의 사회경제적 처지의
한국독립운동은 여하한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전통을 수립하였다. 그것은 3·1운동 정신이기도 했다. 3·1운동은 처음에 평화적 시위로 시작하였으나 대중화 단계에 이르러 폭력시위로 확대 발전했던 것이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는 민중의지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3·1운동은 대중운동으로
의한 저서들도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金承學, ꡔ韓國獨立史ꡕ, 독립문화사, 1965; 申載洪 외, ꡔ韓國獨立運動史ꡕ 3, 국사편찬위원회, 1967; 조동걸 외, ꡔ독립군전투사ꡕ,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등이 있다.
이런 연구 성과들은 1980년대 연구에 든든한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