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는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면서, 행복의 개념, 행복의 결정요인, 행복수준 등에 대한 연구가 근대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부의 증가가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행복의 문제는 삶의 질이나 생활
자신들이 가을에 수확한 미곡을 다 팔고 다시 잡곡을 사서 먹어야 할 정도였다.
이렇듯 합리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근대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농민들이 깨달았던 것은 자신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는 괴리감과 결국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가난’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빈곤을 견디지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산업화에 대한 그간의 연구들은 총량적인 지표의 변화, 즉 성장의 양적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을 뿐, 이와 같은 양적 성장이 국민 생활의 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불평등이나 절대적 지니계수로 측정되는 소득 격차와는 또 다른 개념으로 Wolfson(1994)은 중산층의 소멸과 불평등을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하여, 중산층을 중위소득을 가진 인구계층으로 규정하고 중위소득으로부터의 괴리 정도가 클수록 소득의 불평등이 커진다고 보고 양극화 지수를 고안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