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졌던 것이다.
퇴계 이황은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의 2대 성리학자로 손꼽힌다. 성균관 대사성 등의 고위 관직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벼슬이나 물욕에 눈이 멀지 않고 오직 학문 정진을 위해 힘썼던 퇴계의 철학사상에 기반을 둔 성현정치사상, 민본정치사상, 정치정책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치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항에서는 계통을 중시해 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효는 백행의 근원이고, 인은 만 가지 선의 장이라고 말하며 이 둘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항에서는 특이하게도 환관과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시 궁전 안
정치이념은 더욱 강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동학사상의 출현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서 한국 민족주의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개화사상과 위정척사사상도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대두한 점에서 동학사상과 유사한 면을 갖
사상을 단순히 중국의 역사 속에 있었던 여러 사상가들의 논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자백가들의 사상이 거시적으로는 동양 문화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미시적으로는 한국 사회 더 좁게는 우리 한국
1) 19세기의 사회상
19세기의 조선사회는 최제우(崔濟愚)가 악질만세(惡疾滿世)로 표현할 정도로 정치 ․ 경제 ․ 사상적으로 기본질서가 붕괴되는 혼란상이 야기되고 있었다.
(1) 정치적 상황
정치적으로 가장 문란하였던 것은 인사행정이었다. 과거제도의 경우를 보면 문벌 ․ 당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