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었다. 이를 통해 피지배집단은 개인 또는 조직을 구성하여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망각된 역사적 실재를 복원하고자 하였으며, 기존의 지배집단에 의해 형성된 질서와 문화를 타파하고 또 다른 질서와 문화를 창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학살의 피해를 경험한 집단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교육을 통한 전승을 요구해왔으며 그동안 진행되어 온 국제적 연대 활동을 홍보해왔다. 지속해서 개최된 ‘수요시위’는 ‘위안부’ 피해기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1000회 차 ‘수요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건립된 ‘평화비(소녀상)’는 ‘위안부’ 피해의
기억은 침묵을 강요받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한 일일지라도 그 내용을 발설하면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이 되었고, 그 결과로 형사 처벌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망각을 강요하는 지배권력에 맞서서 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그에 저항했던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식민지배 상황을 거쳐, 민족의 비극 6.25 전쟁 등의 역사적 수난을 경험한 민족들의 ‘한’에 관한 주제들은, 1960년대에 이르러 국가 재건의 움직임에 따라 산업사회 운동이 박차를 가하게 되고, 서양의 문물이 점차 유입됨에 따라 도시의 향락과 유희를 다룬 주제들과 젊음, 청춘의 낭만과 인생의 즐거
역사의 시작을 위한 무장 투쟁을 통한 해방운동을 진행할 수도 있다. 또는 화해라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방식의 과거 청산이 존재하지만 어떠한 방식이 선택받고 성공하는지에 따라서 그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두 번째의 남아공 과거 청산의 의미는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적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