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들은 보다 안정적이고 지적인 시정신의 확립을 꾀함으로써, 현실적 상황에서 격리된 채 자기 노래만을 부르고자 하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세계에 반발한다. 그리고 착잡한 현실과 혼란된 상황, 끝없는 물질적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
I.들어가는 말
6.25라는 엄청난 비극적 체험으로 시작된 1950년대는 한국인 모두에게 인간 실존의 어려움과 그 무의미성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심화시켜주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이러한 전쟁에 대해 시인들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린 삶을 애상적 서정으로 노래하고, 직접 전쟁에 참여하
위한’ 시에서 ‘민중에 의한’ 시로의 변화는 80년대 초반 시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크게 변화 시켰는데, 그 영향을 이어받아 노동 현장 출신의 시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노동자 출신의 시인, 즉 ‘노동자 시인’의 활동을 통해 80년대 노동시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 서강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I. 서 론
한국의 한시는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가치과 삶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시(時)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를 통해 시대상을 알수 있고 삶의 모습 생활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기에 한 시인인 曹植(조식) 의 작품을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煮豆持作羹 콩을 삶아서 죽을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