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조선 공산주의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중요한 일환으로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전체상을 이해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연구대상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분단체제 아래에서 남북한의 민족해방운동사 서술은 협소하고 빈약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초기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를 다룬 기존
: 1920년대 중반 이후의 독립운동과 8.15해방 이후 신국가건설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적 이념은 다양하였지만, 학계에서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독립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형태를 보였기에 ‘민족주의 vs 사회주의’가 아닌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의 구도로 설
1995년, 성재 이동휘가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이는 이동휘를 비롯해 그동안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만주·연해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재평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뒤이은 냉전체제의 몰락은 반쪽에 불과했던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정
신한청년당이 상하이에서 결성되어
1919년 1월에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
고종의 서거 이후, 1919년 3〮1운동 발생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수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국내외 애국지사들
한성임시정부, 상하이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한인들이 이주해 있었으므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은 더욱 직접적인 것이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민족적·계급적 억압을 당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러시아혁명 이후 지배와 수탈이 없어지고 생산자·무산자·피지배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알아차렸다. 이에 조선에서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