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11사단 9연대는 연대본부를 진주 농림학교에 두고 함양, 산청, 거창, 구례의 4개 군에서 공비토벌 작전을 펼 예정이었다. 이 부대 역시 후방의 선무와 잔비 토벌을 임무로 하였다. 몇 개월간의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앞의 아흔아홉 고개의 예처럼 상당한 전사자를 낳기도 했다
이씨
후세에 이순신과 그의 아들 면 . 훈 . 신, 조카 완 등 출중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아산 배암골에 정려를 세웠는데, 이를 덕수이씨 가문에서는 ꡐ5세 7충 2효ꡑ라 부르고 있다. 덕수이씨 문중에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같은 유명한 문인도 있다. 율곡은 13대 손으로 촌수로
함평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일컬어지는 명문가였으며 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조부인 박필균(朴弼均, 1658~1760)은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正二品)를 역임한 명문가였다. 영조 28년 전주이씨 이보천의 딸과 혼인하여 이보천의 아우 이양천(李亮天, 1716~1755)에게
함평이씨(咸平李氏) 창원(昌遠)의 딸에게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경기도 관찰사,예조참판,지돈녕부사를 지낸 조부 박필균(朴弼均)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장하면서 신체가 건강하고 매우 영민하여 옛사란 선침(扇枕)과 온피(溫被) 같은 일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15세까지 제
함평이씨(咸平李氏)인데, 이름있는 가문에 태어났지만, 가풍이 청렴하고 검소하여 생활은 결코 부유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려서 조실부모 하였다고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이후 밝혀진 연암의 아들에 의해 쓰여진 ‘과정록’에 의하면 23세에 모친타계, 31세에 부친타계로 나온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