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에서의 격렬한 민중투쟁은 미군정의 폭력적인 진압이 반복되면서 수많은 사상자들을 발생하게 해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저항함으로써 민중역량의 진정한 실체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민중들의 고조된 열기만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도와 통제가 없었
정국'으로 개편되었다. 이것은 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향한 태아적 정부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조직들은 모두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의 연립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해방 직후 이북 지역에서는 좌우의 정치세력들이 자발적으로 건국을 위한 자치단체를 빠른 속도로 건설하고 있었고, 전체
북한 내 공산주의자들의 조직화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그룹과 일부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주도하에 1945년 10월 13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결성됨으로써 북한 지역의 독자적인 공산당이 태동하였다. 분국의 설치는 향후 북한정국의 주도권을 공산주의자들이 쥐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초 북
Ⅰ. 시작하며
국가외교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도 대외정책의 일차적인 목표는 자기보존 또는 생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10여년이 경과하도록 북한사회는 김일성 생전에 비교해 볼 때 대내외 정책기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으며, 다만 필
북한의 명백한 도발로 전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꼭 단순하게 그것만이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며 때문에 우리 조는 한국 전쟁에 관련하여 국내적, 국제적인 상황과 더불어 남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Ⅰ.한국 전쟁의 배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