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학(虛學)도 동전의 양면처럼.
수업시간에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고 생각을 사유하라는 말씀을 한 것이 최근 나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방법인 것 같아 실천하였더니 고민이 생겼다. 실천해야함을 알지만 하기 싫고 양심에 따라야 하건만 감정에 휘둘리고.. 어느 순간 고민에서 벗어
허학(虛學)으로 자신을 속이고 또 남을 속이는 이중적 인간성을 띤 선비임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자들이 학자로 행세하고, 명성을 누리고, 권력에 빌붙어 출세하고, 부귀를 누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입으로는 온갖 그럴 듯한 말을, 고상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허학이라 비판하고, 유학이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학문 즉 실학임을 자부해 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실학이란 17세기 초 조선에서 형성되어 전개된 진보적 사회사조 및 학문연구방법을 의미한다. 당시 양반출신의 선진적인 지식계층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
허학(虛學)의 배격이며, 학문과 생활을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후쿠자와의 실학실천은 곧 중국사상의 배격이며 서구사상의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사회관계에 순응하는 역할을 하는 비속한 실용주의로부터 학문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비로
허학이라 하였다. 1장에서는 작가가 과거의 사회를 비판하며 현재에서는 좀 실행과 실심으로 바꾸어 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단락이다.
2장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이장에서는 양명학과 주자학의 차이점을 주로 서술하였다. 작가는 이 두가지 학문의 차이점을 공부가 마음밖으로 향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