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은 당왕조의 중흥을 완성시킨 인물로 보인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헌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며 사료에 의해 왜곡되어 부당하게 평가되어 왔다. 그것은 당대의 역사가 현종 이후 황제들의 치세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도 관련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조
헌종의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본론
1) 안사의 난 전후의 藩鎭
710년 처음 설치된 안서․하서 번진을 비롯한 안사의 난 이전까지의 번진이 성립된 그 목적을 알아보면 우선 안서번진은 서역의 방위를 북정번진은 투르크족 방위와 제어, 하서번진은 토번과 돌궐의 연계 단절, 삭방번진은
반면 불일사와 귀법사는 궁궐의 동북쪽 즉 나성의 탄현문 밖에 지어졌으며, 목종대의 진관사와 숭교사는 용수산 기슭에 창건되었다. 이곳들은 대체로 개경의 동북쪽에서 남쪽에 이르는 산록으로 당시 개경의 동북쪽과 남쪽의 경계에 해당한다. 또한 이곳은 대체로 나성의 성곽이 지나가는 곳과 멀리
헌종(憲宗)이 번진억압책에 성공하여, 중앙으로부터 절도사를 파견하고 외진군을 절도사 관할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당은 안정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황소의 난을 계기로 번진이 일제히 자립하여, 마침내 당은 멸망하였다. 오대 때에는 번진에 의거한 무인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무인정치시대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