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1909-1987)은 이상,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문학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작가이다. 그는 ‘구인회’의 주요 회원으로서 카프의 정치주의적 문학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문학의 자율성에 주목하였고, 다양한 실험정신에 의한 소설기법과 새로운 문체 확립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공표되던 문학의 영역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일부 문인들은 내선일체론을 현실로 받아들여 민족의 주체성을 잃은 일본 중심의 비평적 담론을 형성하였으며, 심지어는 친일적 일본문예지의 창간, 친일문학단체의 결성까지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특징지어지는 근대에 대응하는 예술이 모더니즘이라는 위의 진단에는, 모더니즘이 근대의 기본원리의 반영물이자 동시에 그것의 비판자 역할을 한다는 해석이 내재되어 있다. 즉 ‘합리화’와 ‘가치 영역들의 분화’를 기본 범주로 하고 있는 서구 사회의 근대화 과정의 예술적 산물이 모더니즘이라
소설 창작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박태원의 소설이 현대 심리주의 소설의 의식의 흐름 수법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서구문학과의 깊은 관련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루어 볼 때, 박태원의 동경 유학시절은 다양한 서구 현대 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용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