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를 내세우면서 조선 왕조에 큰 획을 긋는다. 또한 민간신앙은 혼란한 사회를 틈타 백성들의 삶 속을 파고들었으며, 후에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조선 왕조에 반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부터 조선 후기 불교계의 동향과 민간신앙이 민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Ⅱ
신앙 등은 오랜 전통과 종교적인 욕구로 여전히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불교는 사후의 명복이나 현세의 구복이라는 측면에서 오랫동안 종교적인 기능을 해오고 있었으며, 국가차원에서 삼국이래로 호국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이 비록 유교국가를 지향하고 불교를 이단으로 배척하였지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크게 호국용(護國龍), 즉 나라를 지키는 용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그리고 호국용 테마 설화의 대표적인 예인 문무왕법민을 중심으로 신라의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용이라는 아이콘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1. 고대민속신앙
초기 원시신앙의 특성은 인간과 특정 동물, 식물과 무생물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믿는 토테미즘으로 씨족집단의 성원들은 그 토템이 자기들을 수호해준다고 믿었다.
(1)단군신앙
고조선을 세운 단군에 대한 신앙.
불교·유교·도교 등의 종교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전해지는 민간신앙
신앙화된 산신이 불교와 어울어지기도 하였다.
호랑이는 흔히 산령, 산신령, 산중영웅으로 불리었다. 신이한 동물로서 호랑이가 호국적 의미로 쓰인 것은 삼국시대 통일 이후로 보여 진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호랑이를 산군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에서 도당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