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1. 호락논쟁의 배경
호락논쟁(湖洛論爭)은 18세기 중, 후반에 발생하였다. 그러나 사학(史學)계의 의견을 참고하면 호락논쟁의 맹아(萌芽)가 이미 양란 이후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락논쟁이 기호학파(畿湖學派), 정치적으로는 노론(老論) 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Ⅰ. 성리학(주자학)의 형성
조선조의 기틀이 확고해진 15세기의 성리학은 사화의 파란을 헤쳐야 하는 사림들에 의해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15세기의 성리학은 곧 사림정신으로 구현된다. 사림들의 사림정신은 따지고 보면 사육신․생육신이 출현하여 드높였던 절의정신에 접목된 것이지만
Ⅰ. 서론
성리학은 중국에서 북송대에 일군의 학자들이 유교에 바탕하여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탐구하는 과정에 형성-발전하게 되었다.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 등은 절충과 종합의 방식으로 기존의 유교에 도교, 불교적 요소를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