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제 1장 ㅡ 작가와 작품, 배경소개
1. 조선조 여성작가 ‘혜경궁 홍씨’
<한중록(閑中錄)>은 남편인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한 여인의 피 어린 기록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글의 작자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5)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과 한산 이씨
혜경궁은 홍봉한이 세자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변명하기 위해 <한중록>에 이렇게 썼다.
그때(세자가 뒤주에 갇힐 때)부친은 재상으로서 첫 15일 엄중한 교지를 받자와 파직되고 동교
에 달포 동안이나 나가 계셨다.
홍봉한이 5월에 파직된 것은 사실이다. 세자가 1주일 이상 시민당에서 대명하
혜경궁 홍씨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의 어머니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735년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로 태어나 1744년에 사도세자(思悼世子)로 일컬어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빈(嬪)으로 책봉되었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됨에 따라 경의왕후(敬懿王后)에 추존되었다.
한중록은 남편이 뒤주 속에 갇히는 사도세자의 참변을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한 인생 회고를 다룬 책이다. 한중록을 읽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간 사도세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혜경궁 홍씨는 어린 나이에 세자비가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은 영의정이 되어, 노론파의
홍봉한 중심의 시파와 세자의 실덕을 지적하고 영조의 처사를 옳다고 보는 김구주 중심의 벽파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남인과 소론도 시 벽으로 분파되었다. 이 시 벽파의 대립은 사도세자의 문제를 분쟁의 표면구실로 삼아 대립하게 되었고, 또한 남인의 시 벽파는 당시 전래하기 시작한 가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