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세기 후반의 홍콩인 사회
1842년 영국에 할양될 당시는 2,000명 정도의 토착민만 있었으나, 1850년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유입되고 아울러 자유무역항으로서 홍콩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홍콩의 인구도 늘어났다.
초기의 홍콩인 사회의 주
홍콩 영화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라고 불리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홍콩 영화에 이런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은 ‘영웅본색(英雄本色)’부터라고 한다. 검은 선글라스, 검은 코트, 검은 바지에 검은 총을 갖고 있던 주윤발의 모습을 보고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정체성이
2. 기회의 땅 홍콩
영화 ‘첨밀밀’은 리밍(黎明)이 남자 주인공 소군을, 장만위(張曼玉)가 여자 주인공 이교를 맡았다. 홍콩은 원래가 이민자들의 도시다. 내륙, 지금의 중국 대륙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도시 규모가 커졌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상하이까지 점령하자 상하이에 있던 상공인들과 자
양안문제는 결국 힘의 논리로 해결되는가
롄잔(連戰)과 쑹추위(宋楚瑜)의 대륙방문 후폭풍이 거세다. 타이완의 두 야당 지도자는 이번 대륙 방문을 통해 1992년 공동인식을 이어받아 일중각표(一中各表 :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타이완과 중국이 각자의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것)보다도 한 걸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