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설논쟁의 배경과 문제의식
주자학의 이론 구조에서 볼 때 心說논의가 갖는 중요성은, 주자학이 단순히 존재론적 논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심에 관한 논의가 현실의 윤리적 삶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심설의 정립과 함께 ‘거경궁리(居敬窮理) 거경과 궁리의 두 강
화서학파를 형성하여 활동하였다. 강필선,『한국 철학 사상가 연구』(철학과 현실사, 2002), 355쪽
화서는 특이하게 기호학파의 학맥에 놓여 있으면서도 율곡을 비롯한 기호학통의 인물들을 모두 젖혀두고 우암을 끌어올려 주자에 직접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가 그의 핵심적 학풍인 위정척사
Ⅰ. 주자학(성리학)의 전파
한국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은 고려 말기,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元)나라에 갔던 안향(安珦)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와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성균관의 유학자들에게 수용되어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새로운 학풍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율곡 사계의 학통을 이어받아 율곡의 성리학을 주자학의 정통을 이은 것으로 만든 사람은 우암 송시열이다. 우암은 퇴계와 우복의 학설을 공격하고 율곡의 설이 옳음을 논증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는데 이는 당시에 예송문제로 격화된 당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암이 48세때 유직柳稷등이 율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도학은 조선시대를 일관하게 지배해 왔던 이념적 기반이었으므로, 19세기 후반 조선왕조 말기의 급박한 역사적 상황에 당면하자, 화서 이항로를 선두로 하여 전국적으로 산림(山林)의 도학자들이 일어나 새로운 각성으로 침체하였던 도학정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