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221_586)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대(五代)에는 수묵을 위주로 수수한 그림을 그린 서희(徐熙)와 채색을 위주로 화려한 그림을 그린 황전이 중국화조화의 쌍벽을 이루었는데, 이들의 그림은 그 후의 화조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 중국의 화훼화가 풍성하고 화려하
민화사는 그 문을 열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발견된 언양 반구대의 암각암 2개소, 고령 알터 마을의 암각문, 그리고 안동 산골에서 찾아낸 바위그림들의 훌륭한 자료들 덕이다.
이들 암각화를 살펴보면 그 속에 물고기, 참호랑이, 개호랑이, 거북 등의 동물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 주술적인 상징성이나
대표적인 회화로서 정통화 대가들의 작품을 제외한 일반 대중이나 서민의 그림을 의미하며 불화 등의 장식과 종교에 관계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김철순(2001)은 민화는 민속화와 같은 뜻으로 보통은 화가들이 일반대중의 실용적, 신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작된 그림을 뜻한다고 말하며 장
민화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회화가 펼쳐졌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격조 높은 남종산수화와 이를 소화시켜 우리의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는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높은 수준의 회화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대부화가, 화원화가, 서민화가들의 그림으로 분류되면서 화풍,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