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1942년 이후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평양에서 향리 빙장리로 지냈다. <기러기> <병든 나비> <애> <황노인> <머리> <세레나드> <노새> <맹산할머니> <독 짓는 늙은이> 등의 단편과 시 <그날> 등 많은 작품을 써두고 8·15광복을 맞았다.
황순원은 그의 작가적 시야를 확대하면서 전후문학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황순원의 문학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작품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란 속에서 발표된 단편소설「곡예사」를 비롯하여 「어둠 속에 찍힌 판화」(1952),「학」(1953)등이 대표적인 작
소설을 쓰지 않고 희곡에만 집중할 정도였다. 특히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1976), 「둥둥 樂良둥」(1978)등의 작품은 전통 설화를 차용함으로써 그를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희곡작가로 자리 잡게 했다.
1980년대에 창작활동을 전폐하고 평론이나 수필의 형태를 통해 문학 활동을 지
전쟁을 거치면서 겪은 이데올로기의 혼란을 담아 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를 객관적 거리를 두고 표현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 소설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같은 노력은 전후문학이 가지는 체험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객관적 거리는 상징과 은
같이 살다》(1947) 등을 발표하고, 광복 후의 단편만을 모은 제2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1948)를 간행하여 단편작가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