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으로 유배되었다)하여 북인의 정치력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북인 내부에 존재했던 비주자학적 사상을 척결하는 사상정화 작업의 의미도 있었다. 특히 정여립은 사상적으로도 대단한 흠이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정호훈, 『朝鮮後騎 政治思想 硏究 -17세기 北人
포진한 정부세력인 부중파로 나뉘게 된 것이다.
궁중파의 핵심인물은 자신의 두 아들이 예종과 성종의 부마인 임사홍과 연산군의 비 신씨의 오빠인 신수근이었다. 이들은 의정부와 육조를 장악한 부중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하려 하였다. 그리고 삼사와 사림들의 잔존 세력도 같이 제거하고자
却說燕王?入京後, 只魏國公徐輝祖, 尙抵敵一陣, 兵敗出走, 此外文武百官, 多迎謁馬前。
각설연왕체입경후 지위국공서휘조 상저적일진 병폐출주 차외문무백관 다영알마전
각설하고 연왕 주체가 남경에 들어온 후에 단지 위국공 서휘조만 아직 한 진영으로 적을 맞다가 병사가 패배하여 달아나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