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북벌론의 시대적 배경
북벌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효종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북벌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찾으면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유는 북벌론의 논리적 토대가 ‘존명사상(尊明思想)’에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지원은
Ⅰ. 들어가며
병자호란 직후 북벌론은 대청관계에 주체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왕의 주도하에 전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경우는 효종대였다. 당시 효종이 북벌론을 국책으로 적극 추진한 이유는 인조반정에 의한 왕위계승에 정통성 결여라는 문제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왕위계승의 정
1. 효종의 죽음에 대해
인조반정이후 개혁을 주도하던 서인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심한 좌절을 겪는다. 이러한 와중에 청에 인질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고 온 소현세자가 두 달 만에 죽고 소현세자의 아들 대신 주화파의 지지를 받는 장유의 사위 봉림대군이 형망제급의 변칙으로 세자에
<조선왕조실록 요약_3>
제 17대. 효종
▣ 북벌운동 추진 (1649~1659년)
- 형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봉림대군(효종)은 청에 대한 복수심을 안고 귀국 함
- 즉위하자 인조의 뜻을 이어받아 북벌운동을 시행(당시 집권세력은 서인)
- 군사를 키우기 위해 어
효종의 승하, 대비 조씨의 복제 문제(1년 VS 3년) ➡ 효종의 정통성 문제
박세채의 탕평론 : 당 불문, 현명한 인재 등용 주장
숙종 : 탕평교서 반포, 갑술환국 후 정국 안정 추구 [BUT. 실제 탕평은 영조대부터]
병신처분 : 윤증 VS 송시열 (회니시비)
➡노론 VS 소론 ➡노론 두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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