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척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문정왕후는 사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교재흥에 나섰다. 이전 불교억제책 하에서는 불경을 요서로 인식하여 유생이 마음대로 절에서 불경을 가져가거나 절을 돌아다니며 승려를 구타해도 처벌받지 않았으나 명종때에는 불경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처벌하기도 한다.
훈척세력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하여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면서 중앙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림의 등장은 이미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 세력과의 사이에서 사화가 발생되었으며 더 나아가 붕당이라는 정치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존의 연구는 사림의 등장으로
2. 비운의 비, 폐비윤씨
성종은 왕위에 오른 초기인 5년에 평생의 배필로 맞이한 왕비 공혜왕후를 잃은 이후로 5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이는 숙의 윤씨, 소용 정씨, 소용 엄씨 등이다. 5명의 후궁은 서로 중전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과 질시, 반목을 하게 되는데 이 당시 대왕대비와 어머니인 인수
Ⅰ. 개요
주자 계열 성리학만을 국시 국학으로 숭장해온 조선왕국의 지배이념에서는 주자의 통치론을 따라 이른바 재상 위임의 통치체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인주는 재상(으로 합당한 자를) 논하는 것을 직무로 삼으며 宰相은 임금 바로잡는 일을 직무로 삼는다. 양자가 각기 그 직무를 제대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