醴泉)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이 성계는 해주에서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고, 조 준·남 은 등도 유배되어 이 성계 일파는 큰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에 위급해진 이 성계 일파는 역성혁명의 반대파 영수인 정 몽주를 격살하고, 이어서 같은 해 7월에 정 도전·조 준·남 은 등은 50여 명
정도전의 삼봉집 中 -불교비판에 관한 저서-
정도전은 신왕조를 개창함에 있어서 가장 공이 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조선 개국 이후 이룬 업적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불교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와 관련된 저술로는 심문ㆍ천답 2편, 심기리 3편, 불씨잡변 20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일련의
< 나의 뿌리를 찾아서 >
씨족의 연원 : 평해 황 (平海 黃)
시조는 황락(黃洛). 중국 한(漢)나라의 장군(將軍)으로 교지국(交趾國)-지금의 월남-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신라 유리왕 5년 우리나라에 표착(漂着), 우리나라 황씨(黃氏)의 시조가 되었다.
‘병진보(炳辰譜)’서문에 보면, 그
국문학선독 족보 레포트
1. <직계표>
1세 시조 李碩 (이 석)
↓
2세 일남 李子脩 (이 자수)
↓
3세 이남 중 장남 李云侯 ( 운후 )
↓
4세 이남 중 장남 李禎 ( 정 )
↓
5세 삼남 중 삼남 李繼陽 ( 계양 )
↓
6세 이남 중 장남 李埴 ( 식 )
↓
7세 육남 중 육남 李滉 ( 황 )
↓
8세 삼남 중 장남 李寯 ( 준 )
↓
9세 삼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