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家煥) 공이 문학으로서 일세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자형인 이승훈(李承薰)도 또한 몸을 가다듬고 학문에 힘쓰고 있었는데 모두가 성호 (星湖) 이익(李瀷)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약용도 성호 선생이 남기신 글들을 얻어 보게 되자 흔연히 학문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서론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그 절반에 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목민(牧民)’이다”라고 했다. ‘목민’이란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관자(管子) 제1편 「목민」에 서 유래했다. 목민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목민(牧 民)에서 목(牧)은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또는 번옹(樊翁), 시호는 문숙(文肅)
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영조대의 남인, 특히 청남(淸南) 계열의 지도자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다.
- 요약한 붕당관계도
훈구파(
조선후기 내포지방의 사상과 종교
1. 머리말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내포는 가야산 앞 뒤의 10고을인 경성해미태안서산면천 당진홍주덕산예산신창 등을 지칭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이중환의 내포지역의 정의에 따라 우선 내포지역을 상정하고 이 글을 시작하겠다.
이
Ⅰ. 유교사상의 전래
유교사상의 전래를 孝悌忠信의 윤리사상, 經學, 典章制度로 이해되는 내용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는 철학계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자료의 빈곤으로 삼국시기 경학의 내용을 추적하기는 거이 불가능한 단계라는 것을 공감을 하면서도 고대국가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