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고려시대에 처음 간행된 『삼국유사』의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전하는 『삼국유사』의 완전한 판본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中宗壬申本이다. 그 중 국내에 전하는 것은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과 고려대 도서관만송문고 소장본이다. 그 외 일본에 전하는 것으로 天理大가 소
奎章閣)을 통해 인재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세종과 정조대의 위대한 업적이 탄생할 수 있었다.
세종과 정조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들은 누구나 인재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양의 성균관을 비롯하여 지방의 향
‘ 김락서 , 원주리 ’ 강독
金洛瑞
金好古洛瑞 , 字文初 金洛瑞 : 조선후기 문인. 자 문초(文初). 호 호고재(好古齋).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규장각(奎章閣) 서리(胥吏)를 역임하였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정조 때 같은 처지의 천수경(千壽慶) 차좌일(車佐一) 조수삼(趙秀三) 등과 교류하였으며,
奎章閣 檢書官)으로 활동을 했으며 『북학의』를 저술하여 북학파의 실학사상을 정리하였다.
성호학파가 유형원을 계승하면서 토지 및 행정 기구 등 사회제도의 개선에 치중했다는 경향에서 경세치용 학파라고 한다면 북학파가 상공업의 유통과 일반 기술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용후생 학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