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이었다.
이러한 서원은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에 의하여 경상도 순흥땅에 백운동서원이 창건된 이래, 조선의 전시기에 걸쳐 전국의 각 주․부․군․현에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그러므로 이 서원에 의한 교육활동은 조선시대의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소백산 자락 영귀봉 아래 위치한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신재 주세붕 선생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고려말 회헌 안향 선생을 흠모하던 주세붕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542년(중종37), 안향 선생의 고향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해 1543년에는 학사를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양대 중둥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최초의 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서원의 본격적 확산은 조선초 이래 계속된 사림의 자기세력 기반 구축을 위한 향촌내에서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16세기 중엽(중종,인종,명종,선조 대) 정계에 진출해 있던 사
Ⅰ. 서 론
조선시대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양대 중둥 교육기관의 하나였다. 최초의 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서원의 본격적 확산은 조선초 이래 계속된 사림의 자기세력 기반 구축을 위한 향촌 내에서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16세기 중엽(중종,인종,명종,선조 대)
서원은 중종 대에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이 효시이며 관학을 대신하는 사학기관이며, 서당은 초등 교육기관으로 수효가 가장 많았고 생명이 긴 교육기관이었다. 서당은 훈장, 접장, 학생으로 구성되어 향교나 사학에 입학할 준비교육을 담당하였다.
유교의 중요한 목표는 修己治人, 즉 修身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