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太監喜寧, 自叛降?先後, 嘗導他入邊寇掠, 且阻上皇南還。
각설태감희녕 자반항먀선후 상도타입변구략 차조상황남환
각설하고 태감 희녕은 에센에 반란해 항복한 후로 일찍이 그를 인도해 변경에 들어와 노략질 하게 하고 상황의 남쪽 소환을 저지시켰다.
上皇恨寧切骨, 輒與侍臣袁彬密議, 謀殺
우겸불성
향로가 타려고 하고 갑자기 종과 북소리가 시끄러움이 대전에서 와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일어나 바삐 내시에게 물었다. “우겸이 성공 못함이 아닌가?”
(此語頗奇。)
차어파기
이 말이 매우 기묘하다.
內侍錯?未答。
내시착악미답
錯?:cu? ?倉促間感到驚愕
내시는 경악해 답을 못했다
우겸사경태조 하등우우 도료신사적몰 병무여물 여언재위 불과일년 소유재물 다지여차 약비탐장수회 시종나리득래
賄(뇌물 회; ?-총13획; hu?)
景泰: 명나라의 제7대 황제인 경태제 때의 연호(1450~1457년). 중국 명나라의 제7대 황제인 경태제(景太帝) 주기옥(朱祁鈺) 때의 연호이다.
영종은 재물을 적발
우겸(于謙)의 책략으로 멸망의 위기는 벗어났으나, 이후 장성(長城)을 수축하고 9변진(邊鎭)을 설치하여 다수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방위에 힘을 기울였다.
16세기에 들어서 즉위한 무종(武宗:正德帝)은 환관 유근(劉瑾)에게 전권(專權)을 맡김으로써 그의 치세는 내란으로 일관하였다. 다음의 세종(世宗:
우겸의 책략으로 멸망의 위기는 벗어났으나, 이후 장성을 수축하고 9변진을 설치하여 다수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방위에 힘을 기울였다.
16세기에 들어서 즉위한 무종은 환관 유근에게 전권을 맡김으로써 그의 치세는 내란으로 일관하였다. 다음의 세종은 도교를 광신하였기 때문에 여러 대에 걸쳐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