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조선시대음악 여악
여악은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신역(身役)으로 악가무를 공연하는 여자음악인을 가리키며, 신분은 천인이다. 여자음악인이란 뜻으로 여공인(女工人)여령(女伶)기악(妓樂)여기(女妓)기생(妓生)기(妓)기녀(妓女)창기(娼妓, 倡妓)관기(官妓) 등도 쓰였다. 기악(妓樂)은 설명할 필요도
조선후기
9.1. 민족 수난에 대응한 문학
9.1.1. 시대변화의 계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제1기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란을 겪고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들어선 것은 동아시아 세 나라가 함께 겪은 변화였다. 일본의 덕천막부와 중국의 청나라와
음악의 미분상태(未分狀態)의 시조에 대한 해명으로 柳晩恭은 시조의 내용과 음조 및 형식을 규명하고 있으며, 신문학 이후 최남선은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時調는 朝鮮文學의 精華며 朝鮮文學의 本流」요, 「조선인의 손으로 人類의 韻律界에 提出한 一詩形」이라 하여 시조가 민족문학의 근본이며
조선왕조 영조 때에 비롯된 것으로 보아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조라는 명칭의 원의(原義)는 ‘시절가요(時節歌謠)’ 즉 ‘당대의 유행가요’라는 말이 줄어서 된 말이므로 엄격히 말해서 시조라는 명칭은 문학 장르의 명칭이라기보다 음악 곡조의 명칭이라고 하겠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와서
조선조 시인들이 가장 가까이에 두고 애호했던 것이 바로 1수로 된 이 단시조였다. 순간순간 촉발되는 감흥이나 회포를 즉흥적으로 노래하고자 할 때, 못마땅한 정치행태나 세태를 촌철살인의 언어로 풍간하고자 할 때, 자아의 신념이나 의지를 선언적으로 세상에 드러내고자 할 때 등등 조선조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