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형주로 눈길을 돌려 여남의 유비를 치고, 다시 신야로 도망친 유비를 추격하여 강하로 내쫓지만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황주에서 군을 일으키자, 조조는 풍토병과, 손권의 공격에 철군한다. 유비는 힘을 길러 한중으로 진격하고, 하후연을 죽여 한중을 빼앗고 조조를 한중에서 크게 이긴다.
하후연과 처음부터 조조를 따라 다니며 누차 전공을 많이 세움. 동탁을 찌르려다 실패하고 진류에 돌아와 의거할 때, 맨 먼저 천여 명 부하를 거느리고 참여하였다. 여포를 토벌할 때 맨 먼저 적장 고순을 만나 싸우던 중 조성이 쏜 화살을 눈에 맞고, 그냥 쑥 뽑아다가 묻어 나온 눈알을 질겅질겅 씹어
하후연의 대군에게 패하여 또다시 방덕·마대만을 데리고 한중으로 장로를 의지해 갔다. 그리고 거기서 가맹관을 지키던 장비와 마주쳐 수백 싸워 또다시 용명을 떨쳤으며, 그를 아낀 제갈량이 뒤로 장로의 모사 양송을 매수하여 난처한 입장에 세우고 이회가 항복을 권하는 바람에 마침내 성도를 포위
하후연을 전사시켜 좌장군보다 높은 정서장군이 되었다는 점에서,
군사장군이라는 직위도 유비가 임시로 만들긴 했으나 그 권한이 상당했으리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남정
유비(선주)가 죽고 유선(후주)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에도, 그리고 죽기 전까지 줄곧 제갈량은
승상으로 14년 간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