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 70년대 학생운동
6,70년대 학생운동은 정권에 대한 실질적인 저항 세력으로서 운동을 주도하였다. 60년대는 반 독재 민주회복을 운동목표로 한 4·19 이념을 계승하여 반 독재민주주의와 반 외세민족주의를 기본개념으로 하여 67년 6·3한일 회담반대운동, 3선개헌반대 투쟁 등으로 전개되었다.
운동이 ‘민주화 운동’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② 유신 체제 반대운동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67년에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종래의 헌법은 대통령직을 1번에 한해 중임할 수 있었으나, 박정희는 3선개헌을 통해 자신이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도록
반대해온 재야, 언론계, 야당 등 각계의 명망가 71명은 그해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 선언’을 채택하고 12월 25일 ‘비정치적 범국민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민주회복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71년 3선개헌반대투쟁을 동력으로 결성된 국민협의회와 비슷한 위상을
운동
한국 언론사의 최대 격동기랄 수 있는 74년, 송건호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이 시기는 언론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로 3선개헌으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모든 행위는 보도할 수 없도록 했다. 소위 긴급조치 1, 2호가 이때 발동됐다.
무장대의 청와대 습격 등으로 나타난 남북관계의 악화와 이것을 계기로 이루어진 박정희 정권의 주민통제 강화 등의 정권의 독재정책과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서 1971년 1,2학기 동안 전국 각 대학에서 교련반대투쟁, 1971년 사법파동, 대학교수 자주화선언 등 민주화 운동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