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국가적 혼란과 은거
김광욱이 활약했던 17세기는 외침으로 인하여 국가적인 굴욕과 수난의 시기였으며, 이에 따라 조선의 사회·문화적 운명이 일대 방향전환이 필요했던 과도기였다. 따라서 17세기를 분기점으로 해서 조선의 역사를 전·후기로 양분하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경향이라 할
1. 머리말
백호가 활발한 시문 활동을 하던 16세기 말은 한문학의 전성기로서, 시가 크게 갖추어져 많은 문사들이 배출된 시기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적 경향을 살펴보면, 이조 전기의 문학적 경향이었던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학이 사장과 도학의 분리와 전문시인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의 출현
사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신라말, 고려초에는 당의 시를 배웠고, 여말 선초에는 송시풍이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16․7세기에는 이전 대의 송시풍에 대한 반발로 시단이 거의 당시풍 일변도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 들어와선 만당을 극복하고 조선적인 당풍과 새로운 송시가 등장하였다가, 17세
사대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는 비교적 세계를 조화롭게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김용철 김용철, 「진청<무씨명>의 분류체계와 시조사적 의의」, 138-141쪽, 『고전문학연구』16, 고전문학회, 1999
은 진청의 편찬이 김천택 단독의 작업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시조를 선택하고 배열하고
사가 발생했다고 보았다. 발전시대인 16,7세기는 사장파와 도학파의 발생과 가사의 쇠퇴를 들면서 시조의 비약적인 발전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18세기는 서민의식의 성장과 실학의 발달에 힘입어서 사설시조 같은 평민시가가 발생하고 가사의 보급이 확대되었다고 설파하고 있다. 한편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