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표되는 민족의 발견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자적 기능은 1930년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그 중심에는 무교회주의와 관련된 《성서조선》지의 김교신, 함석헌 등이 있었다. 무교회란 교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독교가 제도이며 조직체일 수 없다는 뜻이다.
Ⅰ.머리말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일으키며 군부 독재를 심화시키던 시기였다. 조선은 일제의 군국주의에 필요한 자원을 가혹하게 수탈당했으며, 집회의 자유가 봉쇄되고 언론 검열이 심화되는 등, 일제의 무단정치에 의해 사회가 위축되어 있었다. 한편, 1925년 결성되었던 카프(K
1930년대 정체성과 역동성을 잃고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한국 교회에 성령부흥운동으로 활력을 불어넣었고 회개와 기도와 사랑을 선포한 이용도 목사의 고백이다. 사실 이용도 목사는 신학자도 아니었고 어떠한 신학적 저술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그의 인생을 전도하고 설교하는 데
최근 몇 년간 이승만 흉상 건립과 김활란상 제정, 홍난파기념관 · 이은상문학관 건립, 그리고 박정희기념관 건립 등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 등에서 보듯 친일문제와 관련하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친일파 후손들이나 기념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
I. 서론
이 글은 한국 최초의 자생적 기독교 교단인 대한복음교회의 역사와 그 의의를 살펴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대한복음교회는 현재 약 2만여의 신도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교회의 대부분이 수도권과 군산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소교단이다. 그러나 약 70년에 이르는 교단 역사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