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각성운동의 방향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필자는 <한국교회 각성운동의 방향>을 현상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 해결의 실마리를 과거 역사적인 관점에서 점검해 보고 나아가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1. 한국교회의 상황과 그 성장둔화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거주 선교사가 입국한지 약 25년이 지난 이 당시 한국교회는 아직 연소한 교회였고 기독교는 비교적 빨리 수용되어 갔다고 하지만 신앙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영적 쇄신이 필요한 때였다.
정치적으로 당시 한국은 점증하는 일제의 침
한국이 개신교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자.
Ⅱ. 니비우스의 생애 (선교학적인 배경)
존 니비우스는 1829년 4월4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란계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도 화란 계혁 교회인 오비드 장로교회에 다녔다. 미국 프린스톤에서 그는 소명을 받아 그
한국에 와서 교육과 의로 면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칭찬하였다. 1896년 8월 리드목사는 한국의 선교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상동교회부근에 선교회 본부를 설치하여 선교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중국 연회와의 관계는 1897년 5월조선 선교처로 분리 발족하였으며 9월 10일에제1회 조선 지방회
년 부흥은 일제하의 민족의 현실, 정치적 좌절과 불안, 주권상실에서 오는 반일감정의 표출 등을 강조하고 그것이 1907년 부흥의 동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18세기 이후의 부흥의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교회 부흥은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점은 한국에서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