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를 봉해 주고, 새로 점령한 지역의 통치를 위해 자사, 태수, 현령 등의 지방장관을 두었다. 이외에도 그는 部落을 해산하여 分土定居 하도록 하고 屯田을 실시하는 등 대대적으로 農業 생산을 發展시켰다. 이로 인해 북위의 국력은 날로 강성해졌고 아울러 급속히 封建化의 역사과정을 완성했다.
북위의 한화정책을 정점으로 융합하기에 이른다.
Ⅱ. 본론
1. 部落解散과 徙民政策
1) 비수전의 대패 - 종족주의의 부활과 북위의 등장
비수전의 대패로 전진 부견이 지향했던 초종족적 보편원리의 실현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호국가의 종족주의적 권력의 구성원리는 일시적으로 그들
화북 지방)이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황하 유역의 기름진 황토 지대에는 한족(漢族 : 중국민족)의 조상들이 나타나 조·수수 따위를 재배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개·돼지 같은 가축을 길렀으며, 나무와 돌로 만든 연모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칠고 투박한 회도(회색토기)와
화북이 통일하였다.
3) 통치 체제
북위는 다른 오호 여러 나라와 다른 점은 위국을 농업 국가로써 육성한 점이다.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선비족이 선조 대대로 지켜 온 부족제 조직까지 스스로 포기하고 유력씨족장 계층을 귀족으로 재편성) 중국의 농경문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특히 중국 전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