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율곡 이이의 생애(1536~1584)
율곡 이이는 조선 중종 31년(1536)에서 선조17년(1584)까지 생존했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관향은 덕수(德水), 이름은 이(珥), 자는 숙헌(俶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등이다.
율곡은 나면서부터 영리하여 깨달은 바가 뛰어나서 말을 배우
3. 사상
이언적이 서신을 통해 조한보와 벌인 논쟁은 태극논쟁, 또는 무극태극논쟁이라고 불리운다. 이는 송나라 때 성리학의 기초를 닦는 염계 주돈이(廉係 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의 논쟁은 중국의 주희와 육상신이 벌였던 논쟁의 연장선
16세기 전반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연구 결과로 이기론·사단칠정론·인심도심설 등 이기심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이를 둘러싼 논쟁과 학문적 심화과정을 통해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었다. 이황과 기대승(奇大升)간의 사칠논쟁, 이를 둘러싼 성혼과 이이와의 우율논변(牛栗論辨)이 벌어
16세기에 이르러 조선의 성리학은 관념적인 이기론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당시의 철학적 조류는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경덕을 선구자로 하면서 경험적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론이며, 다른 하나는 이언적을 선구자로 하면서 원리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론 이다. 이 두 학자의 뒤를
사칠논쟁의 학문적 의의
퇴계와 고봉이 주고 받았던 사칠논쟁은 학문적 진지성과 자신의 심성론적 논거를 규명하는 분석의 치밀함에서 한국유학사의 학문적 논쟁에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인간을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규정한 맹자가 있고, 그 반대라고 주장한 순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