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바로는 네덜란드 사람 벨터브레가일행 두 사람과 함께 대만을 거쳐 일본 장기로 항해하다가 전라도 해안에 표착한 것이 처음으로 되어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였고 그 국민들은 거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그가 신자였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2) 하멜(Hendrik Hamel) - 1653년(효종 4년)
미국 선교사 채핀부부와 언더우드의 관계에 관한 소고
여는 글
흔히 채핀하면 협성여자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의 문을 열었던 선구적인 여성신학 교육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한국에서의 오랜 선교활동에 비해 그의 남편 빅터 채핀에 대해서는 학계의 관심이
처음부터 한국 교회는 재정 자립을 이룩한 교회로 시작했다.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와 사역자 뿐 아니라 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1904˜7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성경공부와 기도 생활에서 얻게 된 선물이다. 선교가 시작된 지 불과 10년 만에 신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해 1900년부
Horace Grant Underwood)이나, 그는 한국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 원두우는 신학교 입학 때부터 강한 자의에 의하여 선교사가 되려고 결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에 가기를 계획하고 그곳에 가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1년 동안이나 의학과 인도어까지도 준비하였다.
이같이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