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子書節要)>, <계몽전의(啓蒙傳疑)>등의 책을 내놓았다.
이황의 제자들은 뒷날 영남 학파를 이루었고, 이 영남 학파는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은 기호 학파와 함께 우리 나라 유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황의 학문과 인품은 우리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고
朱子書節要),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
3) 서원교육운동(書院敎育運動): 이를 주창함으로써 다음 단계의 사회발전을 미리 준비한 통찰력을 보여줌. 퇴계는 서원을 운영함에 있어 자율적 통제를 원칙으로 내세워 국가권력이 교육과 학문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시켰음.
2. 율곡이이의 사상
節要)>로 따로 편찬되어 간행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자성록(自省錄)>,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이학통록(理學通錄)>, <계몽전의(啓蒙傳疑)>, <전습록논변(傳習錄錄辨)>, <경서석의(經書釋義)>, <심경후론(心經後論)> 등의 저술을 남겼다. 유묵(遺墨)으로 <퇴계필적(退溪筆迹)>과 <퇴도선생유첩(退陶先生
朱子書節要)》,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 《인심경석의(人心經釋疑)》 및 기대승(奇大升)과 문답한 《사단칠정분리기서(四端七情分理氣書)》와 같은 것은 그의 대표적인 명저이다.그가 죽자 선조는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을 추증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문묘(文廟)에 모셨다.퇴계 이
Ⅱ. 본론
1.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1) 퇴계 이황의 생애
(1) 출생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李滉 : 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이며, 관향은 진보(眞寶)이다. 퇴계는 1501년(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