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이 반정을 봉쇄하기만 했다면 연산군 역시 태종과 세조 못지않게 많은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력증진을 추진했다면 이후 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새롭게 쓰여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② 전례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일 처리의 관습.
와 상례 파괴 :
광해군일기》광해 즉위년 7월 4일
광해군은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유례가 없을 만큼 궁궐 등 왕실과 관련된 건축물을 새로 짓고 화려하게 꾸몄다.
1608년 즉위했던 직후, 광해군은 왜란 당시 불타버린 종묘의 중건을 마쳤고 부왕 선조가 시작한 창덕궁 중건사업을 재개하여 1611년 완성하고 창덕궁
연산군은 즉위초에는 할머니 한 대비의 영향으로 불경간행을 금지하지 않았으나 한 대비가 세상을 뜬 후에는 철저한 척불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중종때는 승과가 완전히 철폐되고 동국여지승람에 기재된 것 이외의 사찰을 철폐하고 불경 인행을 중지시켰다. 이 때 채수의 소설 설공찬전이 윤회화복의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