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다시 알기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어디로 갔을까? 이란 책은... 솔직히 듣도 보도 못했었다. 김용만이라는 분은 조금씩 들었던 것도 대학진학 후 내 삶에 빠져 있던 지라 또 다시 고구려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고구려... 솔직히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1. 고구려의 천도
고구려의 처음 수도는 국내성이었다. 그러나 백제와 신라를 압도하고 중국 남북조와 세력 균형을 이룬 전성시대에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게 된다. 삼국 중의 하나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영역으로 등장하였던 국가. 기원전 37년 주몽(朱蒙)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남하
●고구려고구려(高句麗, 기원전 37년경~668년)는 백제,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의 고대 국가 중 하나이다.(하지만 고구려는 삼국시대 이전인 철기시대의 많은 국가중 하나이다.) 지역적으로는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0여 년 동안 지배했던 국가이다.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려(高麗)로 변경했으
고구려는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으며 그들이 압록강의 북쪽 지류인 운하지역에서 단결하기 시작한 것은 1세기 이전으로 올라간다고 생각되지만, 압록강변 통구지방으로 내려와 강력한 왕국으로서 발전하는 것은 제 6 대 태조왕 때, 서기 100년 경 전후부터라고 추측된다. 고구려는 후에 반도안으
고구려는 정복국가인 동시에 문화국가이다. 고구려는 기마를 이용한 우수한 기동력과 철기를 바탕으로한 국력을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한 동방의 강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여 유기 신집으로 대표되는 역사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고분벽화 등 수많은 문화 유
고구려 무덤의 내부 공간을 장식한 고분벽화에는 당대 고구려인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벽화고분은 대부분 당시 고구려의 왕족 또는 상류지배층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인데, 여기에는 마치 그들의 생존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꾸미고 있다. 더욱이 벽화가 그려진 고분
고구려의 무덤에는 크게 돌무덤과 봉토석실무덤 두 가지가 있는데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즉 봉토석실무덤의 현실의 벽면에는 두텁게 회칠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과 흑, 적, 청, 녹, 황, 백등 물감으로 벽면이 젖었을 때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법으로 벽화
Ⅰ. 개요
고구려는 정복국가인 동시에 문화국가이다. 고구려는 기마를 이용한 우수한 기동력과 철기를 바탕으로한 국력을 배경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합한 동방의 강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여 유기 신집으로 대표되는 역사서를 비롯하여 찬란한 고분벽화 등 수많
Ⅰ. 서론
고구려는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 만주 통구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럽고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패기에 찬 미술을 이루었다.
회화는 만주 집안현 통구 지방과 평
Ⅰ. 고구려(고구려시대)의 불교
고구려는 B. C. 37년 小水(渾江)를 중심으로 消奴部, 絶奴部, 順奴部, 灌奴部, 桂婁部 등 5部族(진단학회, 1981 : 226)이 세운 국가로 28왕 705년간 유지되었다.
太祖王(53~146?) 때에 桂婁部 高氏의 왕위 계승권이 확립된 이후 故國川王(179~196) 때에 이르러 왕권의 강화와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