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리째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동기를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무교 전통은 독립적이기보다는 각 종교에 혼합 및 습합함으로써 한국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끼쳐왔다. 특히 유교, 불교, 도교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여기서는 한국의 ‘보이는 종교’로서 위치가 공고한 불교에 한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일본 종교의 현황
일본 종교 인구는 2003년도에 일본정부문화청이 집계한 종교 인구를 만명단위로 끊어 표시하면 신도계가 1억 678만명, 불교계가 9549만 명, 기독교가 182만 명, 기타(생장의 집, 천리교)가 1065만 명이다. 또 종교 법인은 18만 3000개 이 밖에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단위 종교 법인이
1.일본의 불교
1. 신불습합 (神佛習合)
일본의 고대불교는 개인이 계율을 지키고 정도를 닦아 깨달음을 얻고 영혼을 구제한다는 근본정신과는 달리 전래되는 즉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데 토속종교가 우세한 일본에서 이를 뒷받침해준 이론은 신불습합의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説-황실이나 후지
1. 서론
평균적으로 한 아파트 단지마다 적어도 두 개씩 들어선 교회와 성당들 덕분에 이제 우리에게 기독교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의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포교활동 때문인지 불교도들의 활동보다 기독교도들의 활동이 더 활발하고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기
일본을 가리킬 때, 외면적으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나라로 표현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종교의 나라’라고 부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공식적으로 800만의 신이 있으며 정통 신도(神道)와 불교를 제외한 신흥종교의 수는 10만에 가깝다고 추산하기 때문이다. 유기남, “현대 일본의 신흥
1. 고대
고대사회는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이 지배하는 국가가 성립되고, 뒤이어 율령제도(律令制度)에 입각한 국가체제가 유지된 4세기 초에서 12세기 말에 이르는 시대이다. 긴키내(內)를 중심으로 하여 오진왕릉[應神王陵]닌토쿠왕릉[仁德王陵] 등 거대한 능묘를 비롯한 많은 분묘가 조영된 고분시대
Ⅰ. 들어가는 말
조선 후기는 양란 이후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시기이다. 특히, 학문적으로는 성리학이 점차 교조화되면서 서학과 양명학, 실학 등이 수용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황으로 성리학의 기반을 둔 조선 왕조는 위기를 느끼게 된다. 조선 왕조가 아무리 성리학
1. 종교분포
전체 종교 중 불교개신교천주교의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 전체 종교 중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면
- 남자 : 불교 20.1%→23.3%, 개신교 14.5%→17.7%, 천주교 4.2%→6.0%
- 여자 : 불교 23.5%→26.5%, 개신교 18.2%→21.5%, 천주교 5.3%→7.5%
○ 무종교 비율이 남자는 7.3%p 여자는 7.6%p 감소했다.
- 남자
감 사 합 니 다.
1. 신도(神道)
신도는 일본 고유의 자연종교이며 독특한 토착신앙
자연에 대한 숭배심이 종교로 발전한 정령신앙, 즉 애니미즘의 일종
초기에 자연물을 신으로 삼았지만 점차 선조를 신으로 섬김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음
신도신화는 고대왕권의 확립기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