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이다. 안산시는 서울시의 공업기능분담 및 국토의 균형적인 개발, 그리고 서해안 개발의 거점 확보와 과밀한 서울시 인구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주 캔버라시를 모델로 하여 인구 20만 명 규모의 전원공업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계획규모 이상의 급격한 인구증가, 지나친 공업기능의
안산의 역사
원래 고구려의 장항구현(獐項口縣) 또는 고사야홀차현(古斯也忽次縣)인데, 신라 진덕왕이 장구현으로 고쳤으며 신문왕때 장구군(獐口郡)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초기에 안산현(安山縣)으로 고쳤고, 현종 9년(1018)에 水州(水原)의 속현(屬縣)으로
되었다.
충렬왕 34년(1308)에 덕종, 정종,
안산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안산시의 ‘국경없는 마을’을 외국인노동자의 인권보장 뿐만 아니라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좋은 시도로 보게 된 것이다. 안산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직접 찾아가서 현실을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 ‘국경없는 마을’을 세부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