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태표기의 개념과 필요성
1.1. 형태표기의 개념
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의 어려움은 언어와 문자 자체의 성격에서부터 비롯한다. 즉, 국어는 형태론적으로는 교착어에 속하지만 한글은 문자론적으로 음소문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교착어는 형태와 형태의 결합이 매우 발달된 언어이며, 음
전용을 과감하게 실천하였다. 초기는 일제시대 주시경의 제자들이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 을 그대로 썼다. 그러나 1948년에 이르러 북한이 조선어학회 맞춤법을 비판하고 그들 나름의 새로운 맞춤법을 만들어 <조선어신철자법>이 공포됨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 언어규범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남북한의 언어정책이 달라진 것은 1947년 북한이 조선어문연구회를 강화하면서부터 비롯된다. 1948년에 공포된 『조선어 신철자법』도 이 기구가 중심이 되어 마련하였다. 1948년 북한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뒤에는 이를 교육성으로 옮겨 리극로
조선어학회(뒤에 한글학회) 통일안의 개정 변천 사항
① 1933년 한글 맞춤법통일안
구성 : 총론 3개 항, 각론 7장(총65개 항),
2개 부록
- 총론 삼(三)과 제7장의 61-65항까지가 띄어쓰기 규정, 부록 2에 문장 부호 16개 항도 나와 있음
특징 : 의존명사와 보조 용언류의 붙여쓰기
문제점 : 고유명사, 합성어, 전
조선어신철자법>이 공포됨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 언어규범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로동당 , 뇨소’와 같이 말 첫머리의 ‘ㄹ’ 과 ‘ㄴ’을 발음하도록 규정하였고, ‘깃발 ’ 처럼 합성어에 된소리가 나는 것은 ‘기´발’과 같이 사이표(´)를 쓰고 불규칙 활용에 나타나
조선어신철자법⟫에서 철저한 형태주의를 강조하고 한자어 어두음에 [ㄹ, ㄴ]을 그대로 표기하고 사이시옷을 폐기한 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후 1954년 조선어철자법에서 본격적으로 용어와 관점에 차이가 부각되기 시작하고 김일성의 두 차례가 교시 (1964, 1966) 1964년 김일성 1차 교시,
2. 「한글맞춤법」과 「조선말규범집」의 비교
2.1 한글맞춤법과 조선말규범집의 소개와 변천과정
2.1.1 한글맞춤법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 총회에서 지명된 12명의 맞춤법 제정 위원은 2년 동안에 걸친 심의를 거듭하여 1931년 12월에 이르러 맞춤법의 원안 작성을 마쳤다. 두 차례의 검토 회의
, 북한에는 1966년 이후 ꡐ문화어ꡑ를 표준으로 쓰고 있다. ꡐ문화어ꡑ란 김일성의 1966년 5월 14일 교시(ꡐ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 데 대하여ꡑ)에 따라 서울말 표준의 남한 표준어와 구별하기 위한 용어로,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정한 북한 표준말의 이름이다.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어, 분단이 된 이후에도 남북한은 이를 계속 사용해 왔었다. 그런데 1964년 이래 북한에서 먼저 말 다듬기 사업을 하여 1987년에 '다듬은 말' 2만 5천여 개를 선정, 1988년에 <조선말규범집>을 개정하였고, 우리도 1976년 이래 국어 순화 사업을 해, 1988년 <한글 맞춤
조선어 신철자법>을 제정하여 공포하였는데 한자어 표기에서 이 두 자음에 [ㄹ,ㄴ]표기, 합성어 표기에서 사이시옷 대신에 사이표['] 표기, 형태소의 어음교체에 사용되는 6자모 설정[■ㅡㄹ,■ㅡㅇ, , Y,ㄹ,ㅣ]등이 남한과 다르다. 1954년에 <조선어철자법>을 제정하였으나 1949년 간행된 『조선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