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 목민심서 -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의
다산 정약용
[丁若鏞, 1762.6.16~1836]
1. 생애
1762년 6월 16일에 경기도 광주군 마현리에서 진주 목사 이제원의 넷째아들로 출생
1770년 9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심
1776년 15세, 정조가 왕이 되고 아버지가 호조 좌랑에 오름.
1783년 회시라는 과거에 3등으로 합격.
178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가주서 벼슬을 받음.
고시(古詩)
정약용(丁若鏞)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와
지지배배 그 소리 그치지 않네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묵어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 곳에 깃들지 않니?”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
★정약용(1762~1836)
생애
-1762년(영조 38) 8월5일 경기도 광주 초부면 마현리에서 양반 가문인 정재원(丁載遠)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 목사를 지냈고,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다. 그가 9세였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아래에서 세 형과 더불어 글 공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