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泰 植 (弘益大)
Ⅰ.
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서, 18세가 되던 391년에 왕위에 올라 412년까지 22년간 재위하였다. 그는 왕의 신분으로서 많은 전쟁에 참여하여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그 이후 고구려는 중국의 漢族이나 북방의 塞外民族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강국이 되었다. 그
廣開土王陵碑에 보이는 倭兵
광개토왕릉비문의 내용을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및 왜의 군사적인 관계뿐 아니라 외교관계도 알 수 있는 자료가 제시되는데, 아래의 신묘년조의 기록은 그 해석에 있어 많은 견해가 제기되었다.
가. (1) ⒜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
보여주고 있다.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통구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基)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그림2] 장군총의 모습과 표지석
1. 碑文의 守墓人 관계 記事에 대한 관심
廣開土王陵 碑文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광개토왕의 선조와 그의 치세 등으로 간단히 적은 다음, 광개토왕의 업적 중에서도 특히 그의 정복활동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끝으로 광개토왕의 능묘를 지키는 수묘인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이상으로 고구려의 각 지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도성과 이와 관련된 주요한 논쟁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기존의 학설이었던 산성과 평지성을 묶어서 도성을 형성한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고, 환인 지역 시기 도성 비정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