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平王)이 사망한 뒤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제27대 왕으로 즉위했다. 선덕여왕의 즉위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이 왕위에 오른 사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선덕왕 즉위기사에는, 진평왕(眞平王)에게 아들이 없어서 국인(國人)이 추대하여 세웠다고 하였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성골(聖骨) 남자가
眞平王) 께서 이광옥으로 부터 전해 들으시고 왕(王)이 기이하게 여기고 아이를 직접 접견하고 보니 과연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음을 보고 성을 "曺"라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용지(龍池)에서 동해신룡의 정기를 이어 받았다하여"계룡(繼龍)"이라 지어 주었다
(卿相)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는 꿈속에서 들은 말을 신라 진평왕(眞平王)께서
이광옥으로 부터 전해 들으시고 왕(王)이 기이하게 여기고 아이를 직접 접견하고 보니 과연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 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음을 보고 성을 "曺"라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용지(龍池)에서
眞平王) 43년(621)에 각각 처음으로 조공사를 보냈다. 그런데 당은 삼국의 조공사가 처음 도착했을 때 책봉해주지 않고 있다가, 634년에 이르러 삼국을 동시에 책봉해 주었다. 이는 삼국을 동등한 책봉 대상국으로 삼아 상호 견제하려는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당이 628년에 중원을 다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