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일록中)
① 청에 간 대원군을 돌아오게 하고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 폐지.
② 신분제 폐지. 능력에 따른 관리 임명
③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 보호. 국가 재정 확보
④ 내시부를 없애고 그 중 우수한 인재 등용
⑤ 부정한 관리 중 심한 자는 엄벌
⑥ 각 도의 상환미는 영구히 받지 않음
⑦
갑신정변 회고록 p96~97
->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의 사상적인 차이가 분명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급진개화파가 완전한 친일인지는 심히 생각해봐야하는 부분이지만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국가의 개혁을 꿈꾸었음을 예상할 수 있고, “폐부의 신하”라는 표현의 온건개화파는 청에 의존
Ⅰ. 갑신 정변
1. 개화파와 갑신정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중국의 양명학, 훈고고증학 등 한학의 도입과 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대두되어 성리학은 조선 전통사회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으로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경제적 피폐와 관료의 극심한 횡포에 따른 민생고 문제에 대한 반
19세기 중엽 조선에서는 개화사상이 발생하였고, 그 사상은 개화파를 형성하여 발달하였다. 개화파는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조선의 근대화 움직임을 보는 남북한의 시각은 상당부분 상이한 점을 갖고 있다.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관하여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으나, 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현시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E.H Carr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 내가 다양한 레포트 주제들 중에서 하필이면 '동학농민운동과 갑신정변'의 비교를 택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