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서간의 구체적인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사로 6촌의 촌장들에 의해 추대된 부족장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혁거세를 이어 사로국의 장이 된 남해를 「次次雄」으로 불렀는데, 차차웅은 자충이라고도 한다.《삼국유사》에서는 "남해거서간은 또한 차차웅이라고도 한다“고 거서간과 차차웅
거서간'이라 했다.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을 '거실한' 혹은 '거서간'이라 하게 되었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준 것을 소리높여 칭송하며, "이제 천자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있는 여식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구나" 하며 환호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신라와 발해(성립,발전,사회,경제,문화,)
<신라>
신라의 왕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왕은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왕의 순으로 변하였다.
이 중 거서간과 차차웅은 함께 쓰였다. 거서간은 군장을 의미하는 듯하며, 차차웅은 무(巫,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이 하나씩이고 니사금(尼師今)이 16명이며 마립간이 4명이다. 그런데 나말(羅末) 최치원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모두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의 명칭은 쓰지 않았다. 이것은 그 칭호가 야비(野鄙)하여 그렇게 부르지 못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사실을 기록함